한번 비췸을 얻고 히브리서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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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6:4-6절을 보면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한번 비췸을 얻었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장에 나는 빛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1:5-12절을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참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었다는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서신을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겠다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인으로서 예수를 믿겠다고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한번 비췸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요한복음에 주제는 구원과 출교입니다. 출교를 당한 예루살렘교인들이 살기가 힘들어서 믿음을 포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말씀을 듣고 나왔다가 다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은 들었지만 다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비췸을 얻고 은사를 맛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은사가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2:7-11절을 보면
고린도 전서12장은 모든 은사가 나와 있습니다. 이 은사를 맛보았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7:7절을 보면“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은사는 한사람은 이렇고 한사람은 저렇고 각각 받은 것이 다릅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은사를 맛보고는 은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육적인 은사와 영적인 은사가 있습니다. 은사는 다시 말씀드리면 그 사람이 살아가는 소질과 같은 것입니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물론 노력도해서 이루어지겠지만 어느 정도는 타고 나야합니다.
육적인 은사는 육신이 사는 동안 육적활동을 통해서 얻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소질들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기계를 잘 만지고 어느 사람은 시를 잘 쓰고 이런 것들이 육적인 은사들입니다. 영적으로도 예수를 믿으면 은사가 주어집니다. 각각 다르게 이 사람은 이런 것으로 저 사람은 저런 것으로 주어집니다.
이 은사가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으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아마 한국교회 거의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 할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한 성령으로 했다고 하기 때문에 성령 받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은사들은 성령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도구로 주어진 것입니다.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논란도 많습니다.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된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 갈 사람이 되었다고 결론이 내려져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도 지옥갑니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성령 받었던 사람이 지옥갈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금 본문 말씀을 가지고 성령 받았던 사람이 지옥 간다고 거의 모든 사람이 말합니다. 본문에 성령에 참예한바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에 참예한바 되었다가도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복음은 한번 복음을 깨닫고 복음 안에 있으며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고 복음을 알고 있는데 복음이 그렇다면 히브리서에 성령에 참예한 자가 타락한다는 말씀과 상충이 됩니다.
히브리서 6장을 해석하지 못하면 복음에 대한 이해도 못하고 또 반대하는 자들에게 반박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반문합니다. 여기 봐라 성령 받은 사람도 타락한다는데 왜 구원받은 사람이 타락해서 지옥 안 간다고 말하느냐고 반문합니다. 이 말씀은 신학적으로도 교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장로교는 기본적으로 칼빈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멸망치 않는 다는 것이 기본 교리입니다. 그런데 현재 장로교안에서도 구원받았다가도 잘못하면 지옥 간다고 말합니다. 현대교회는 칼빈주의가 거의 사라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았다가도 잘못하면 지옥 간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말씀 때문입니다. 분명히 성령체험을 했다가도 지옥갑니다. 성령 받은 사람도 지옥갑니까? 성령을 받았으면 지옥을 안 가는 것이 원칙인데 히브리서에는 지옥 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합니다.
병 고치는 것이 성령 받은 것입니까? 우리 몸을 가상적으로 그려본다면 육과 마음과 영으로 되어있습니다. 몸이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이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깨달아야 합니다. 몸에 와서 하는 성령의 역사는 갑자기 뜨거워지기도 하고 추워지기도 하면서 육체를 통해서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육체에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라고 합니다.
사도행전2:17절을 보면“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내가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육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육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는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꿈을 통해서 어떤 일에 대해서 응답을 받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신을 육체에 부어주므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 육체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예언, 방언, 통변, 신유등 여러 가지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의 역사는 역사하다가 끝이 나면 끝이 나버립니다. 그리고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입니다. 우리 몸이 성령의 역사를 받아 뜨거워집니다. 뜨거워져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할 때만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순간적으로 역사할 때만 뜨거워지고 추워지고 방언도 하고 그렇게 외적으로 나타납니다. 나타나다가 끝이 나면 그대로 끝이 납니다. 육체에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영원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우리마음에 생각에 역사 하십니다. 마음이 영일까요? 육체는 몸을 말하고 마음은 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은 영이 아닙니다. 바울이 마음이 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14장에 보면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미하고 마음으로 찬미하고... 마음은 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와서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마음에 와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마음에 현상으로 일어납니다. 마음에 와서 역사하시는 성령도 역시 성령이 역사 할 때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와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도 충만 할 때는 뭐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끝이 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도 역시 영원성이 없습니다.
영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역사가 아니라 영원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 성령의 역사입니다. 1년 2년 오랜 시간 나오도록 하는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지만 이 사람이 꼭 구원을 받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는 육체에 임한다든지 마음에 임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교회에 다니도록 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영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는 다릅니다. 우리 속에 잠시 있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성을 가지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영은 우리 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8:9절을 보면“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이 영의 역사는 우리 속에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성령이 역사하기 전에 마리아의 속에 예수가 잉태되었을까요? 안 되었을까요? 마리아는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에 성전에 있었습니다. 다른 문서에 보면 마리아는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물론 성경으로 취급할 수는 없지만 다른 문서에 보면 마리아의 부모가 아이를 못 낳아서 기도해서 낳은 딸이라 해서 성전에서 살았다고 전합니다. 그를 성전에 바쳤고 성전에서 살게 했던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은 분명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대로 살았지만 속에 예수는 없었습니다.
예수가 있을 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잉태된 것도 성령의 역사고 그 전에도 성령의 역사로 살았지만 예수가 잉태되기 전에는 속에 다른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속에 다른 생명이 없는 성령의 역사를 가르켜서 외적인 성령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속에 예수가 잉태된 것은 내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잉태된 것은 내적인 역사이고 마리아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외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마음과 몸을 주관하고 살지만 이것은 역사하다가 떠나가면 그만입니다. 예수가 속에 잉태되면 외적인 성령이 떠나가도 새로운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성령에 참예한바 되었다는 말씀은 속에 탄생한 성령이 아니고 외적인 성령의 역사를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성령을 체험했다는 말씀입니다. 마음과 몸이 성령에 참예한바 된 것입니다.
마음과 몸에 성령 체험한 사람은 언제든지 타락 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에 성령이 역사한 사람은 그 성령이 언제든지 떠나가면 그만 입니다. 성령이 외적 역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탄생된 사람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속에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속에 사는 것은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구원에 관한 성령의 역사는 속에 탄생되는 것을 말씀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성령에 참예한바 된 것은 몸과 마음을 주관 했던 성령의 역사를 말씀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주관 했던 성령의 역사는 언제든지 체험했다가도 지옥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와 내적 성령의 역사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몸과 마음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는 신앙생활( 기도, 찬양등) 중에 나타납니다. 구원을 받는 내적 성령의 역사는 이런 신앙생활 중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몰론 기도하다가도 말씀이 깨달아 지도록 하는 특별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구원받을 말씀이 깨달아 져야 합니다.
외적인 성령의 역사는 말씀이 없이도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때 성령이 역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말씀 없이도 나는 성령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외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육체에 나타나면 자기 임의로 할 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말이 나옵니다. 방언이 나옵니다. 육을 내가 주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런 것은 기도를 통해서 나타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인 성령의 역사는 말씀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어서 믿어져야지만 속에 성령이 잉태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어도 그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성령이 거할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서에 성령에 참예한바 되었다가 타락한 사람은 속에 있는 역사는 없고 밖에 있는 역사로 몸과 마음으로만 성령을 체험한 사람이 타락했다고 말씀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6:5-6절을 보면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하나님의 선한 말씀은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도 들었습니다. 히브리서를 받는 사람들은 처음에 복음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의 말씀을 듣고 모인 공동체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선한 말씀은 성경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인데 유대인이다 보니까 다시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면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히브리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선한 말씀을 들었지만 복음을 믿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내세의 능력은 천국의 능력입니다. 선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내세를 맛보았는데 어떻게 타락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타락 했다는 말씀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사람들은 육적인 성령의 은사가 강하면 내세의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육체에 성령의 역사가 강하면 꿈을 통해서든지 여러 가지 현상으로 경험하면서 나도 천국 가겠구나 하고 믿어집니다.
복음이 없는 사람이 성령의 강한 체험을 하면 나도 잘 하면 천국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못하면 지옥 간다고 말합니다. 천국이 좋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것은 육체에 주어진 성령의 역사로 환상을 본다든지 꿈을 꾼다든지 방언을 한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내세를 맛보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변화 산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변화된 모습을 보았을 때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것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서 살자고 말합니다. 복음이 없어도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천국이 있구나 나도 잘 하면 천국 갈 수 있겠구나 이렇게 믿었을지라도 그 시간이 지나면 내적인 성령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아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사람은 복음의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시림들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 했다고 하니까 천국에 갈 확신이 있는 사람이 후에 타락한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있어서 천국에 들어 갈 확신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타락하지 않습니다. 외적으로 성령체험한 사람은 언제든지 타락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말씀은 6절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6:6절을 보면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성령 받은 사람도 타락 할 수 있다는 말을 구원 받은 사람도 타락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타락 할 때 무엇 때문에 타락하느냐고 물으면 율법을 잘못 지키면 타락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하면서 히브리서6장의 말씀을 율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이 말합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율법을 잘 못 지켜서 타락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율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 다시 돌아오면 구원을 받습니까? 못 받습니까? 당연히 구원받겠지요? 다시 돌아오면 구원 받습니다. 또 타락 했다가도 다시 또 돌아오면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언제든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본문은 안받아 준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회개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과연 이것이 어떤 타락 이냐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타락은 백번이고 천 번이고 타락 했다가 돌아오면 용서해 줍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율법적인 타락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타락으로 보고 있다면 다시 회개 할 수 없다는 말씀이 성립 될 수 없습니다. 6절에 있는 말씀을 질문하면 답변을 못합니다. 이 사람은 타락하면 다시 새롭게 하여 구원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적인 타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하는 타락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하면 끝입니다. 다시 돌아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하고 또 회개하면 안 됩니까?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을 부인했다가 회개하면 회개가 됩니까? 안 됩니까? 그것도 역시 돌아오면 회개가 됩니다. 히브리서.6장의 말씀은 참으로 중요 합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말씀에 곤욕을 치릅니다. 대부분 답변을 하지 못합니다. 제가 지금 이 타락을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한 타락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하면 못 돌아오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부인한 타락도 얼마든지 돌아 올 수 있습니다. 부인 했어도 다시 돌아와서 회개하면 됩니다. 분명한 것은 여기에 나오는 말씀은 어찌되었든 예수를 부인한 타락입니다.
그 다음.절을 보시면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예수를 부인했기 때문에 못 박은 것입니다.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의 결론은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다시 부인하는 것이라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다시 부인하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타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자체를 부인하는 타락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그런 타락은 구원받을 수 없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이 구원 받을 수 없냐는 것입니다. 참으로 고민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한 사람이 돌아 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다시 올 수 있습니다.
그럼 히브리서에 나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체험해 본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다 체험해 보고 십자가를 부인하는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체험해보지 못하고 십자가를 부인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체험해 보고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하는 사람은 돌아올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박태선장로 같은 사람입니다.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고 통역도 하고 병도 고치고 입신도 하고 이런 체험을 다해보았습니다. 다 했는데도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왜? 구원받을 길이 없냐면 가서 복음을 말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체험한 것이 너무 크니까 복음을 말해도 어리석은 소리한다고 오히려 핀잔을 줍니다. 나도 다 해보았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병도 고쳐보고 그것 쓸떼없는 거야 그러면서 거절합니다. 체험을 많이 해본 사람은 복음을 말해도 웃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서 말해도 시시하기 때문에 듣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 체험을 해보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다가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고 병도 고치고 다 해보고 나서 결국에 가서는 예수는 우리를 구원할 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구원할 길이 없습니다. 문선명이도 이런 사람입니다. 이단으로 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체험해 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단에 빠진 사람은 그래도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다 체험해 보고 이단으로 간 사람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어렵습니다. 히브리서6장 4절부터 그런 내용들을 다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이런 저런 경험을 다 해보고 타락한 사람들은 다시 새롭게 할 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율법적인 타락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도전입니다. 복음에 대한 도전도 성령의 외적 모든 은사를 다 체험해 보고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앞에 있는 성경 절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6:1-2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1-2절 말씀은 옛날 초보적인 것이고 완전한데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는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오려면 먼저 율법을 거쳐야 합니다. 율법은 몽학 선생이 되어서 예수 앞으로 인도합니다. 도의 초보입니다. 율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초보적인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울면서 통회 자복하는 것은 초보들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 하는 역사들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초보입니다. 이상하지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초보입니까? 여기는 분명히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초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구약적인 신앙, 예수 없는 신앙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신앙을 다시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사람들에게 편지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가 무슨 구원을 주냐 옛날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그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도 초보라고 말씀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구속받는 것을 배워야지 그냥 하나님만 믿는 것은 초보니까 버리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는 줄 아는 것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안수 받으면 성령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들의 부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교리도 버려라 심판받는 다는 교리들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으니 버리라는 것입니다.
심판받는 다고 아무리 말해도 우리는 죽었다 살아납니다. 아무리 외쳐도 그것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은 예수 앞에 오는 초보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는데 어떻게 하면 부활하느냐 예수를 믿으면 부활한다고 하니까 예수 앞에 오면 그것도 초보라는 것입니다. 심판 받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심판을 안받느냐 심판을 안 받으려면 예수 믿어야 한다. 심판의 교리도 부활의 교리도 예수 앞에 오는데 다 초보적인 교리라는 말씀입니다.
안수받는 교리 세례받는 교리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교리 하나님을 믿는 것 이런 것들은 다 초보적인 것이다. 이제는 예수그리스도 앞으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는 말이 이런 것들은 전부 그들이 해본 것이다, 그들은 안수도 받았고 안수 받을 때 은사가 내려서 기뻐서 뛰기도 해보고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예수님이 살아나신 설교도 들었고 심판에 대해서도 알고 실재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체험해 보고 이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다 해보고 또 4절부터 나오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 복음의 말씀도 듣고 내세를 맛보고 이렇게 다 해본 후에 타락한 사람 이것들을 다 해보고서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해보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체험해 보고 결론을 내리는데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뭐만 못해보았느냐 속에 임하는 성령을 못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못 받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타락 했을 때는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타락은 율법적인 타락을 말씀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적인 타락을 말씀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타락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이 병입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적인 타락으로 볼 것입니다. 이것을 율법적인 타락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율법적인 타락을 했다가 돌아오면 구원을 못 받습니까? 그렇게 물어 보면 됩니다. 돌아오면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럼 히브리서에는 돌아오면 못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왜? 받는다고 하느냐고 다시 물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 복음을 반대해서 이것을 질문하면 역으로 공격하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히브리서6:7-8절을 보면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4-6절까지 성령 받은 사람이 타락한다는 말씀을 하다가 갑자기 7절부터 땅이 채소를 내면 복을 받고 엉겅퀴와 가시를 내면 불 살음을 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8절까지는 같은 내용을 말씀 하시면서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채소를 내면 복을 받고 엉겅퀴와 가시를 내면 불 살음을 당한다 참으로 이상한 말씀입니다.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이곳의 말씀은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씨다 씨가 좋으면 채소를 내고 씨가 나쁘면 엉겅퀴와 가시를 낸다 이것은 씨에 따라서 나는 것이지 밭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밭이 아무리 좋아도 엉겅퀴 씨는 엉겅퀴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비췸을 맛보고 은사를 맛보고 한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한 사람인데 이 씨가 어떤 씨냐는 것입니다. 참 종자냐 아니면 가짜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3:37-39절을 보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의 아들이 되려면 좋은 씨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씨는 예수가 와서 뿌려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인데 채소는 사람들이 먹는 좋은 것을 비유해서 말하고 엉겅퀴는 나쁜 씨를 말하는 것입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땅이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했는데 채소를 내면 복을 받고 가시를 내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면 채소만 왕성합니까? 엉겅퀴도 같이 왕성합니다. 비가 내리면 엉겅퀴도 같이 비를 맞습니다. 성령이 내려질 때 성령을 비로 비유했습니다.
성령이 내려질 때 좋은 씨만 성령을 받느냐? 나쁜 씨도 성령의 도움을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밭에 내리는 비가 좋은 씨든 나쁜 씨든 흡수하는 것 같이 성령의 도움도 좋은 씨나 나쁜 씨나 같이 영향을 줍니다. 비가 와서 가시나무가 자라든지 채소가 자라가는 것은 비를 흡수해서 자라는 외적인 자람이지 씨 자체를 변경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체험을 다 받고 타락한 사람이 외적인 것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체험을 했지만 씨 자체는 악한 씨였다는 것입니다. 씨가 다른 씨는 외적인 체험을 다 할지라도 결국은 멸망 받아 불태움을 받는 것입니다. 똑같은 비를 받아서 채소를 내면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불사른다고 하지 않고 엉겅퀴와 가시를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채소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외적인 성령의 역사냐 씨가 다른 씨로 바뀌는 것이냐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복 받는 것은 씨가 바뀌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씨가 바뀌지 않고 외적으로 비를 듬뿍 받고 왕성하게 커 봐도 그것은 씨가 가시나무 씨이기 때문에 가시밖에 못 맺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왕성하게 보이지만 결국은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엉겅퀴와 채소 중 어떤 것이 더 왕성하게 자랍니까? 엉겅퀴가 더 왕성하게 자랍니다. 밭에 엉겅퀴 조금만 있어도 그 밭이 전부 엉겅퀴 밭이 됩니다. 같은 비를 받아도 엉겅퀴가 더 자랍니다. 외적으로 풍성한 것을 보지 말고 내적으로 씨가 어느 것인가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씨가 채소면 복을 받고 엉겅퀴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에 나타난 씨는 잘못된 씨라는 것입니다.
“한번 비췸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여러 가지 경험을 다 해보았는데 이것은 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결국 십자가를 부인한 것입니다. 좋은 씨가 되는 것은 씨를 뿌리는 자의 손에 달렸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그리스도요 예수를 통해서 뿌려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구속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받아들이지 않고 외적인 성령 체험만 했기 때문에 결국은 가시나무이니까 불 살음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사람은 다시 새롭게 해서 돌아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히브리서6장의 말씀은 율법적인 타락이 아니고 복음적인 타락이란 말씀입니다. 은사를 많이 체험한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깨달으시고 믿음으로 요동치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전하는 귀한 일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예수의 날까지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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