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신부와 기생

옹기장이 2013. 1. 22. 21:51

신부와 기생(계21:1-8)

 

 

성경은 예수님과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비유해 말한다. 예를 들어 목자와 양, 포도나무와 가지, 신랑과 신부 등이다. 오늘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갖고 생각하며 은혜받고자 한다.

 

오늘의 성경본문 중 2절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마치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마치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한 신부와 같은 것이다.

 

사람이 예수의 신부 즉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먼저 알아야한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 가운데 그를 선택한 것은 무슨 자격이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신부의 자격과 능력은 전혀 없지만 오직 신랑의 뜻에따라 사랑과 은총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신부의 자격을 거저 받았다. 인간은 누구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신부될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신부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오로지 은혜(값없이 주어진 선물)로 된 것이다.

 

신부로 선택받은 사람은 예수님과 사랑의 언약을 하고 결혼생활에 들어간다.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는 일은 그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자격은 없지만 선택을 받은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식을 올리고 결혼생활에 들어간다.

 

예수님과 결혼생활에 들어간 신부는 이제 무엇보다 신랑과 사랑을 나누며 신랑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야한다. 하지만 신부는 그럴 능력이 없어 당황스럽다. 사랑이신 예수와 사랑을 나누며 하나가 될 능력이 신부에게는 전혀 없다. 신부는 몸과 마음이 부정하고 불결하기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사랑이신 신랑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 신부의 자리에 섰지만 신부로서의 능력이 없기에 좌절하게 된다.신부는 사랑과 거룩이신 예수 신랑과 너무 멀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다음에도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쉼없이 나온다.

<악한 생각 곧 음란,도둑질,살인,간음,탐욕,악독,속임,음탕,질투,비방,교만,우매함.> 등이다.(막7:21-22) 그리고 계21:8에 언급된 것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부가 그와 사랑을 나누며 하나가 되는 길을 마련하셨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이다. 그 은혜를 입기 위해 신부는 오직 신랑 앞에서 자신의 무능과 허물을 고백하고 도움을 청하면 된다.자신 속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을 솔직히 말하고 그것들을 제게해 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기뻐하며 도와주신다. 인내하는 사랑으로 도우신다. 허물을 발견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회개하면 할수록 더러운 마음은 제거되고 예수의 마음이 생긴다.언행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에 품은 죄와 허물까지 솔직히 신랑 앞에서 자백하면 예수는 언제나 그를 긍휼히 여기며 이해하고 용납한다.날마다 그러다보면 신부의 마음이 갈수록 예수의 마음으로 교체된다.신부는 점점 신랑의 마음을 닮아갈뿐만 아니라 행실도 닮아간다. 신랑을 닮을수록 신부는 신랑과 하나가 된다.이를 위해 신랑 예수는 목숨까지 버리는 희생을 기꺼이 치르신다.

 

사랑이신 신랑 예수의 도움으로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이는 내 스스로 노력해서 예수를 닮아가는 것과는 다르다. 신부로 부름받은 사람이 사랑과 거룩이신 예수의 은총으로 점점 예수를 닮아가는 과정이 곧 신자의 삶이요 구원이요 영생이다. 천국은 지금 여기서부터 예수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한편 현실 교회에는 안타깝게도 예수의 신부만 있지 않다. 거기엔 기생 같은 사람들도 있다. 기생의 주된 관심은 예수의 주머니와 능력에 있다. 예수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몰두한다. 그들은 예수를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데 삶의 목적을 두지 않고 예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육신적, 물질적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기생은 신부보다 더 화려하고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더 애교스럽고 진한 향기를 내기도 한다.하지만 기생은 절대 남자에게 마음을 주지는 않는다. 예수를 닮아가는 일엔 관심 없다. 기생의 궁극적 목적은 오직 예수를 이용하여 세상적 목적을 얻는 데 있을 뿐이다. 예수 능력을 빌어 세상에서 높아지고 부자되기,성공하기에 전력할뿐이다. 

 

예수를 이용하여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2;15)을 얻고자 하는 교인(church man,church member)은 기생교인이다. 십자가 앞에서 먹을 것,마실 것,입을 것을 먼저 구하며 사는 사람은 기생이다(마6:33).그에게 십자가는 육신적 목적을 성취하는데 유용한 주술적 도구일뿐이다. 그런데 교회에 입문 할 때부터 기생이 있고 도중에 변질된 기생이 있다. 아예 처음부터 예수를 이용하여 잘 먹고 잘사는 소원 성취를 이루려는 교인이 있고 도중에 변질된 교인이 있다. 변질된 사람은 처음에는 신부로 부름받아 신부로서 살다가 중간에 기생으로 전락된 것이다. 처음엔 예수를 닮아가는 신앙생활에 힘쓰다가 중간에 기복신앙,성공주의신앙,소원성취신앙에 빠진 것이다.오늘의 성경본문 중 8절에서 첫번 째로 언급된 자가 이에 해당한다. 8절은 최후의 심판 때 영벌에 처해질 사람들을 말하는 데 그 첫째가 '두려워하는 자들'이라고 했다.여기 '두려워하는 자'란 성경원어로 볼 때 '비겁한 자'를 말한다.이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건 중간에 기생같은 교인으로 전락한 신자를 말한다.

 

예수님은 결코 기생교인에게 유혹당하거나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알 필요가 있다. 기생교인은 예수를 이용하려고 갖은 수단방법을 다 쓰다가 스스로 넘어진다.스스로 미혹되어 헛수고를 하다가 귀신들의 밥이 되고 만다. 화려하게 경건의 모양 내기에 힘쓰다가 종말엔 예수님을 원망하고 저주받는 무서운 형벌에 처해지고 만다.어떤 기생교인들은 참신자인 줄 착각하고 살다 지옥에 떨어지는 저주를 받기도한다. 주의 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갈 사람들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 가운데 기생교인이 많다.

 

진짜 가방과 짝퉁 가방을 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한다. 그처럼 기생교인과 신부교인을 분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심령을 훤히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정확하게 구별된다. 종말에는 더욱 선명하게 분별될 것이다. 평생 교회 다니고도 지옥에 갈 사람이 아마도 많이 있을 것이다.

 

매우 혼돈스러운 이 시대에 기생교인이 되지 않는 길은 무엇인가?

날마다 회개하는 믿음으로 사는 게 길이다. 즉 날마다 신랑이신 예수를 바라보고 회개하며 닮아가는 것이다.

 

이는 인간 스스로 불가능한 일이다. 교양을 쌓아도 안되고 도를 닦아도 안되고 수행을 해도 안된다.더러운 마음을 사랑과 거룩이신 예수의 마음으로 바꾸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타락한 인간이 원수를 위해 축복하는 일이 가능한가? 악으로 악을 갚는 인간이 선으로 악을 갚는 존재로 스스로 변화될 수 있는가? 인간은 이기심으로 가득찬 존재이다.자신의 탐욕을 위해 타인을 서슴없이 해치고 죽이며 살아온 게 인류이다. 지난 20세기 1백 년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인간의 손에 죽임당한 사람의 숫자가 1억이 넘는다.지금도 그런 전쟁은 진행형이다.갈수록 인류는 더 세련되고 더 노련하게 타인을 해치고 죽인다.전쟁은 총과 칼을 갖고 하는 것만이 아니다.살인도 눈에 보이는 살인만 있은 게 아니다. 경제전쟁도 있고,간접살인도 있다.

 

기생교인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 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흉악하게 만드는 짓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천주교의 기생교인들은 15세기부터 중남미를 침략하여 수백 년 간 그곳 원주민 1억 가량을 죽음에 내몰았다. 오로지 땅과 황금,성과 노동력을 강탈하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아무 죄책감 없이 악행을 저질렀다. 개신교 기생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17세기부터 북아메리카에 침략해 들어간 유럽의 기생교인들은 역시 그곳 원주민 1억 가량을 죽음에 내몰며 땅과 황금, 성과 노동력을 강탈했다. 그들은 그것도 모자라 아프리카 원주민 1천만 가량을 사냥하듯 잡아다 노예로 부렸다. 1천만을 끌어오느라 5백만 가량의 흑인을 죽이기도 했다. 또한  기독교국가요 '신사의 나라'라고 자처하는 영국은 호주를 침략하면서 자국의 흉악범 16만을 보내 그곳 원주민 100만 명 가량을 무자비하게 죽이도록 했다.

 

기생교인은 단지 기생교인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흉악범이 되는 것이다.천사를 가장한 흉악범 말이다. 십자군으로 가장한 흉악범이다.  

 

더러운 마음과 언행을 예수의 마음,형상으로 바꾸는 일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믿음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더러운 마음이 언행으로 옮겨지는 것을 볼 때마다 그것을 주 앞에 자백하며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다.그리하면 주님은 죄와 허물을 당신의 피로 씻으시고 그 자리에 성령으로 임하신다. 임하신 성령은 성령의 열매(갈5:22-23)를 맺도록 그 사람속에서 활동하신다. 십자가는 지은 죄를 씻는 것만이 아니라 죄에 종노릇하는 옛사람을 죽이는 일도 한다.믿음은 십자가에서 옛사람을 죽이는 데 필요한 것이다. 믿음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 온전한 예수의 신부가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가져야할 자세이다.

 

성령 안에서 날마다 부지런히 회개하여 예수의 신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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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6.10 주일예배 설교요지(평안감리교회 김달성목사)

출처 : 천국이 있는 풍경
글쓴이 : 고재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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