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절 [????? ??? (욤 테루아흐)] 나팔을 불 날
나팔절 [????? ??? (욤 테루아흐)] 나팔을 불 날
서두
유대인은 이 날을 전통적으로 신년(新 年)이르는 의미로 [??? ????(로쉬 하샤나흐)]라고 부릅니다. [???(로쉬)]라는 것은 '머리(頭)'라는 의미고, [???(샤나흐)]라는 것은 해(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날로부터 유대의 가을절기가 시작되는 Tishri 월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Toshri월의 전 달인 Elul월의 1일부터 이스라엘의 회당에서는 나팔을 불면서 이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립니다. 레위기 23:24~25에서는 안식일로 지키도록 명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레 23:24~35)
그러나 유대인은 전통적을 이 날을 2일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이해와 성경적인 해석에 대하여 검토하면서 이 나팔을 불 날에 대하여 공부하려고 합니다.
성경적 배경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절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 (샵바트),안식일]
2) [?? ????? (하그 하?쵸트),무교절],
[xs;P'h; (HaPasach, 하파싸흐/하파싹크) 유월절]
[??????(비쿠림)맥추절]
3) [?? ?????? (하그 하샤부옷),오순절(칠칠절)]
4) [????? ??? (욤 테루아흐),나팔절]
5) [??? ?????? (욤 핫키프림)속죄절(일)]
6) [ ?? ?????(하그 하스콧트)초막절]
이러한 절기를 히브리어로 [????(모에드)]라고 하고, 이 것은 약속된 날, 약속된 장소 또는 거룩한 날, 거룩한 장소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 [????(모에드)]가 성경에서 최초로 사용된 곳은 창세기 1:14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표준새번역)
(창:1:14)
창1:14에서 계절로 번역되어 있는 것이 히브리어로 [????(모에드)]입니다. 레위기에서는 이러한 절기는 ‘여호와의 절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레 23:2}. 이 절기는 주님과 약속한 날로 주님과 약속된 장소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절기라는 것은 만나기 위하여 소집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 ‘만나다’라는 의미는 히브리어로 [????(미크라)]라고 하고, 그 의미는 ‘불러내다, 소집하다, 모으나, 낭독하다’등의 의미가 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절기 이외에도 매월 첫 날인 월삭에도 모여서 예배를 드리도록 명하시고 계십니다.
월삭에는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 년 되고 흠없는 수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민 28:11)
이러한 여호와의 절기는 매주, 매월 또는 계절마다 행해집니다. 유월절과 칠칠절은 생명이 태어나는 봄의 절기이고,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은 열매를 맺는 가을의 절기입니다. 성경에서는 나팔절에 대해서는 속죄일과 초막절처럼 상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 ??? (욤 테루아흐), 나팔절]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깊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의 전통적 이해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비교해가면서 이 절기에 대하여 배워보려고 합니다.
전통적 이해
유대의 전통적 해석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여 예로부터 현인들의 여러 가지 견해와 해석에 기초를 둔 전통적 해석입니다. 아무튼 유대인은 이 나팔절을 신년으로 맞이하고 있으므로 [??? ????(로쉬 하샤나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날을 하루가 아닌 2일간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선, 왜 나팔절을 신년으로 하고 있는가? 성경에서는 출애굽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빕월(니산월)을 1월로 하도록 하셨는데 말입니다.
우선 나팔절을 [??? ????(로쉬 하샤나흐)]로 부르게 된 것은 탈부드의 시대부터 라고 랍비들은 설명랍니다. 탈무드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2세기 이후를 말합니다. 즉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디아스포라(Diaspora)가 시작되어 성전과 제사, 예물(제물)을 중심으로한 예배보다는 토라 공부와 랍비 중심으로 된 랍비적 유대교의 시작으로부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왜 나팔절을 신년으로 했는가? 그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달력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절기의 때를 알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서 파수꾼이 날짜를 확인하여 나팔을 불어, 날(時)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 때 확실한 날을 알리기 위해서는 하루가 더 필요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날은 전통적으로 사람이 창조된 날이므로, 1일 보다는 조금 더 긴 날(日)이었을 것이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몇 가지 신년(新 年)이라고 생각되는 달(月)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취임을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간을 계산할 때는 아빕월(니산월)부터 계산을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달력과 같습니다. Elul의 달의 1일에는 짐승의 제물(예물)의 십 분의 일을 드리기 위한 신년(新年)입니다. Shevat월(니산월로부터 11번째의 달)의 15일은 나무(木)의 신년(新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Tishri월(니산월 로부터 7번째의 달)의 첫 날이 [??? ????(로쉬 하샤나흐)]로 불리는 신년이고, Tishri월로부터 신년으로 하는 것은 유대인의 민간(民間) 달력입니다. 이러한 2가지의 달력은 옛날 모세의 시대로부터 유래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 ????(로쉬 하샤나흐)]는 고대 중근동의 신성의식(神聖儀式)으로부터 유래 했다고 합니다. 신(神,god)을 왕으로 맞이 하기 위해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불렀다고 하는 것으로 당시의 시대 배경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이라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 절기는 가정보다 회당이 중심으로 되어 모였다고 합니다. 하나님(神,God)을 왕으로 맞이 하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천지 창조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이 이 절기의 테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때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새롭게 해 주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신약 성경 안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새롭게 한다는 의미는 히브리어로 [???(하다쉬)]라고 하고 신년을 의미하는 [???(코데쉬)]와는 같은 어원입니다. 영어로 ‘RENEW’에 가까운 의미를 갖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시 새롭게 고쳐주신다고 하는 가치관입니다. 이러한 히브리적인 생각에 있어서의 새롭다는 의미는 ‘RENEW’에 가까우므로, 요한 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의 의미도 이러한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7년마다 지키는 안식의 해와 그 안식의 해를 7번 지난 그 다음의 해는 희년[lbeAy(요벨)]이되고 이 Tishri월(니산월에서 7번째 달)부터 시작됩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 년이라
칠 월 십 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레25:8~10)
노예로 팔렸던 사람들, 토지를 잃은 사람들 모두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8~19)
희년[lbeAy(요벨)]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 61:1~2을 인용하고 있지만, 이사야서에는 희년[lbeAy(요벨)]이라고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타?크에서 ‘은혜의 해’라고 기록되어 있는 곳은 여기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내용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모든 사람을, 포로된 상태에서 해방시켜 회복시키신다는 즉 희년[lbeAy(요벨)]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때에 중요한 것은 나팔입니다. 히브리어로 [rp'AV(쇼파르)]라고 하고, 수양의 뿔로 만듭니다. 흥미 있는 것은 이 뿔을 유대인들은 [lbeAy(요벨)]이라고 부르고 있고, 또한 전통적으로 창 22장에서 이삭의 대신에 드려진 수양의 뿔을 의미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삭 대신에 드려진 수양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뜻한다고 하면, 그 수양의 뿔은 우리들에게 회개하라는, 그래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 절기의 큰 테마는 회개입니다. 나팔[rp'AV(쇼파르)]의 소리를 낼 때에 3가지의 부는 방법을 조합하여 여러 가지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 중 하나는 ‘테키야’라고 하고, 크고 길게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 것은 왕을 맞이할 때 부는 방법입니다. 그 다음으로 ‘쇼바림’이라는 것은 3번을 나누어서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영혼의 부르짖는 소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테루아흐’라는 부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팔절을 의미하는 [????? ??? (욤 테루아흐)]의 테르아흐입니다. 이것은 짧고 연속적으로 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영혼에 회개(각성)을 요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테루아흐의 히브리어가 아브람을 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랍비들은 이 나팔 소리를 듣는 것이야 말로, 토라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랍비들의 가르침에는 이 나팔절[????? ??? (욤 테루아흐)]의 때에 하나님의 심판의 법정이 열리는 때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에 3권의 책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생명의 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킨 사람들의 이름이 놓여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책에는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 등의 이름이 놓여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책에는 어느 쪽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놓여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때에 하나님의 법정이 열리고, 누가 이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가를 정한다고 합니다. 이 판결이 내려질 때에가 속죄일[??? ?????? (욤 핫키프림)]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부분과 어떠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0:12~15)
사도들의 애해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은 이 절기에 대하여 어떠한 이해를 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유대인 이었으므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발견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들이 어떻게 나팔절을 이해했을까? 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합니다.
복음서와 서신 서에서 직접적인 단서를 찾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절기를 표현한 부분에서 찾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 24:31)
마태복음 24:31절은 요한 계시록의 여러 구절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의 재림을 예언하는 곳과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 데살로니가의 사람들에게 가르칠 때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6)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부활에 대하여 고린도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2)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의 시작은 Tishri월을 연상하게 합니다. 만약 여호와의 절기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한 후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1~2)
위의 구절을 읽는 다면, 요한복음 1장과 Tishri월의 관련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그 내용 전체가 장래에 일어난 것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고, 많은 곳에서 나팔을 소리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Tishri월을 연상하게 합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은 Tishri월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결론
여호와의 절기는 주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오순절(칠칠절)은 성령의 강림입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23:22)
이 칠칠절(오순절)의 때에, 레위기 23:22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이방인에게도 주님의 은혜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 되도록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마 24:14에 약속된 대로 다시 오십니다. 그것이 최후의 수확입니다. 이 Tishri월의 절기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시대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해야 할까요?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1)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는 것 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 되돌아가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새롭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주님을 자신의 생활의 중심에 두고 생활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이 나팔절[????? ??? (욤 테루아흐)]의 중요한 테마는 회개입니다. 일반적으로 회개라고 하면 참화, 반성과 같은 일시적인 회개와 행위로써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회개는 히브리어의 [???(슈브)]로부터 유래합니다. 이것은 ‘되돌아가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의 잘못된 길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어떤 랍비는 다음과 같이 회개[????(테슈바)]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생기를 넣으셔서 생령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가야만 한다고 합니다. 즉 진정한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께 되돌아 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되돌아 갈 수 있는가? 하나님께 되돌아 간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들은 주어진 성경 외에서는 하나님과 만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간다고 거기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어느 곳에 가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으로 되돌아갈 때에 하나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되돌아갈 때에 그곳에서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 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잘못을 알고, 마음으로부터 회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교제)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왕으로써 맞이함- 하나님께 되돌아갈 때에, 성경으로 되돌아 갈 때, 우리들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가르침 안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왕과 백성과의 사이에 있는 약속(언약,계약)입니다. 그 명령과 가르침대로 살 때에 왕에 의해 지킴을 받을 수 있고, 또한 약속된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왕으로 받아 들인다고 하는 것은 왕에 의한 심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대문에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을 경우 그것에 따라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위협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악으로부터 지킴을 받는 것입니다. 왕의 심판이 없다면 이 세상의 악은 항상 우리를 주관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의 심판의 때라는 것은 왕의 백성을 지키는 것을 말하고, 또한 왕의 백성에게 상이 약속되어있다는 말하는 것입니다.
3) 나팔을 부는 방법-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분명히 Tishri월을 맞이하기 직전과 같은 때입니다. 나팔을 부는 것은 왕이신 예수님의 재림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나팔은 전쟁에 나아갈 때, 사람들을 모을 때, 왕을 맞이 할 때, 등에 사용됩니다. 지금의 시대는 영적 전쟁에 나가는 때이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쳐야 할 때이고,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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