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욤 핫키프림)속죄절(일)]
배경
레위기23장에서 명하고 있는 절기인 속죄일[??? ?????? (욤 핫키프림)]입니다. 오늘은 속죄일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절기와 관련한 말씀에 대해 배우려고 합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절기)입니다. 왜냐하면, 1년에 한번 오직 이날에 대제사장이 제사장들의 죄와, 전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날은 성전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건을 정결하게 합니다. 레위기 16장에서는 대제사장이 어떠한 방법으로 그 맡겨진 임무를 행하는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선, 이날은 대제사장의 행동에 대하여 자세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대제사장은 물로 몸을 씻고 세마포(모시)로 만든 옷과 관(모자)등을 착용합니다. 보통 대제사장의 복장은 출애굽기28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매우 화려하고 고가(高價)의 옷을 입습니다만, 이 속죄일에는 늘 입는 제사장의 옷 대신에 세마포(모시)로 만든 옷을 입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랍비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제사장과 그의 가족을 위해 수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 후에 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예물(제물)로써 수염소 둘을 취하여, 제비를 뽑아 그 중에 한 마리는 주님을 위해서,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한 예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잡아 대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 때 단의 불로 태운 향을 두 손에 가득 채워서 들어갑니다. 여기서 흥미 있는 수수께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향을 두 손에 가득 들고 있는 상태에서, 제물(예물)의 피도 소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고 들어간 향의 연기로 증거궤를 가리우도록 하고 나서, 제물(예물)의 피를 증거궤의 위에 있는 속죄소의 앞에 7번 뿌립니다. 이러한 행동은 수송아지의 경우도 염소의 경우도 동일합니다. 래서 지성소로부터 나오면,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취해 단(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또한 단위에 피를 손가락으로 뿌려 단을 이스라엘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합니다.
그 후에 남은 아사셀을 위한 산 염소에 전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불의와 그 범한 죄를 고하고(고백하고) 그 고백한 것들을 그 염소의 머리에 두어 광야에서 놓습니다. 대제사장은 제물(예물) 드리는 행위로 피범벅이 된 옷을 벗고, 몸을 씻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은 후, 자신과 백성들을 위해 번제를 드려 속죄를 합니다. 한편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사람은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옵니다.
탈무드에서는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10회 이상 손과 발과 몸을 씻는 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제사가 끝나면 대제사장은 대제사장 본래의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고, 전 이스라엘의 백성 앞에 나타납니다. 성경에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에 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마 27:58~60)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 1:12~16)
요한 계시록에는 예수님께서 해가 힘있게 비추는 것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다고 예언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서적인 가르침으로는 속죄일에 희년이 선언됩니다. 이 희년은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해(年)입니다. 즉 회복을 의미합니다. 메시아에 의한 회복만이 완성의 때입니다.
속죄일의 사건에 대해 매우 흥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미슈나에 의하면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는 빨간 리본을 그 뿔에 묶고, 그 염소를 광야에 내어 보낸 후에 회막문의 리본의 색이 변하면 하나님께서 그 예물을 받으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1장 18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여호와께 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 1:18)
그러나 성전이 훼파될 때까지의 40년간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40년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의 강림이 있었던 후의 40년간입니다.
유대인의 가치관
전통적으로 속죄일은 금식을 합니다. 나팔절 또는 [??? ????(로쉬 하샤나흐)]로 불리는 날의 기념이 끝나면 그 속죄일을 맞이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행하는 금식입니다.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레 23:27)
이 구절의 ‘스스로 괴롭게 하며’를 금식으로 해석하여 이처럼 금식을 합니다. 또한 이날은 하나님의 법정이 닫히는 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법정은 나팔절에 열리고 그 심판이 내려지는 것이 속죄일이 됩니다. 나팔절의 때에 펼처진 3권의 책- 생명책, 악인이 기록된 책, 생명책과 악인의 책의 중간의 책-을 근거하여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은 이 때를 더욱 좋은 행실을 하도록 권하고, 특별히 선한 일을 할 것을 장려합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가치관은 성전이 훼파되고 제물(예물)에 의한 죄 용서를 받는 것을 행할 수 없는 시대에 랍비들에 의해 유대교안에서 가장 강조되어 퍼졌다고 합니다.
또한 모세는 2번째 하나님께 받은 10계명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가 이 속죄일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10계명이 주어졌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지만,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으로써 살도록 그들에게 2번째의 10계명(토라의 중심)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계약의 성립이자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금식과 안식일
만약 기쁨의 날인 안식일과 속죄일이 겹쳤을 경우는 금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랍비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안식일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날을 축복하여 기쁘게 지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여서, 성전이 파괴된 날을 기억하여 금식을 하는 AV월의 9일이 안식일과 겹쳤을 경우는 안식을 다음날에 금식을 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속죄일의 경우는 안식일과 겹쳤다고 하더라도 금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레23:27절의 ‘스스로 괴롭게 하며’로 번역되어 있는 히브리어는 [???(아나흐)]로 ‘노력하다, 괴롭게 하다, 훈계하다, 징계하다, 슬프게 하다’의 의미를 갖습니다. 영어로는 ‘afflict(KJV), deny(NIV), be humble(YTL,LXX)’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랍비들이 ‘이 날에 금식하는 것은 겸손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Targum PJ에는 이 부분을 ‘겸손’으로 계속 번역하고 있으며, 먹는 것, 마시는 것, 목욕하는 것, 기름을 바르는 것, 침대에서 자는 것, 신발을 신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주해(註解)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랍비들은 공통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히브리어의 [??? (아나흐)]와 같은 어근으로부터의 파생어로‘노래하다, 친양하다, 말하다, 소리를 높이다, 증언하다(창30:33, 출20:16)’등의 의미를 갖는 단어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 Tim hegg는 ‘속죄일의 때에 긴 시간 많은 기도문을 소리를 내어 읽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같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증언하다’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법정의 앞에서 증언하는 곳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는가 생각됩니다. 이상의 것을 같이 생각해 보면 속죄일에 단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정의 앞에서 조심스런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증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혼식
여호와의 절기의 영적 의미를 결혼식의 풍습으로 예를 드는 것은 랍비들의 전통적인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23장의 이삭과 그의 처 리브가와의 결혼식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xs;P'h; (HaPasach, 하파싸흐/하파싹크) 유월절 / 아내로 맞이하다.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지라
(출 6:7)
출애굽기 6:7의 ‘너희를 빼어낸’ 의 ‘빼어내다’라고 하는 히브리어에는 ‘아내로 맞이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아내로써 선택하기 위해 애굽으로부터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 ?????? (하그 하샤부옷) 오순절(칠칠절) / 결혼식
유대인의 결혼식에는 사전에 결혼 서약서를 교환하여, 우선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가 됩니다. 이 때에 둘은 이미 법적으로는 부부이지만, 결혼식을 올리기 까지 성(性)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 1:18)
마태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둘은 부부이지만, 성관계는 없었습니다. 결혼식을 끝낸 커플은 신랑의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집이 준비되기까지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기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혼식 날은 오직 신랑의 아버지만이 알고 계시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 ??? (욤 테루아흐) 나팔절 /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옴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결혼식은 저녁에 행해집니다. 그래서 신랑은 신부를 맞이하러 옵니다. 이 때에 나팔을 붑니다{이것은 속죄일에 부는 나팔과 같은 의미를 갖는 다고 생각됩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마태복음 25:6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하여 가르쳐주고 있는 24장과 25장의 비유중의 하나입니다.
??? ?????? (욤 핫키프림) 속죄절(일) / 결혼식
마태복음 22장의 혼인 찬지의 비유는 이 때를 비유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 19장~22장은 예수님의 재림과 그 분의 신부인 에클레시아(선택 받은 자)와의 결혼식을 그리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 양의 혼인 날이 되었다.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고,
하느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되었다. 이 고운 모시옷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이다. (공동번역)
(계 19:7~8)
?? ?????(하그 하스콧트) 초막절 / 허니문(신혼여행)
이것은 요한 계시록에 있는 천년왕국의 상징적인 축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 계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들의 메시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님의 존귀하신 피에 의해 맞이된 신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이 말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예수님의 신부로써 어울리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2)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예수님의 재림(강 림)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그리스도)의 신부로써 어울리는 삶이란 어떠한 것일까요? 영, 영혼, 몸이 완전히 보존되는 삶이라 어떠한 삶을 말할까요? 그것은 좀 전의 요한 계시록 19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8)
신부가 입어야하는 세마포란 성도의 바른 행위(옳은 행실)입니다. 그렇다면 ‘바른 행위’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죄가 용서를 받았으므로 바른 사람이 되었다. 기독교는 행위의 종교가 아니다. 구원은 믿음에 의한 것이다.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신부가 된 사람, 즉 믿음에 의해 구원을 얻은 사람이 그 후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구원을 얻었다고 그 후부터는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도 될까요? 그것은 NO입니다.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기 때문에 신랑에의 순결과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깨끗한(정결한, 거룩한) 신부로써 신랑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신부로써 맞이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신부로써 어울리는 삶을 살도록 자신의 토라를 주었습니다. 토라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정결한 삶을 위한 방침입니다. 그것은 지금 메시아에 의한 에클레시아에 있어서도 동일합니다. 성경 66권은 타?크와 (구약성경)과 예수님에 의한 토라의 바른 해석과 가르침을 정리한 복음서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토라에 기초를 둔 가르심인 서신서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바른 토라의 공부은 이러한 성경의 구성과 관계를 이해한 후에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공부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부에게 주어진 삶의 방침을 확실히 몸에 익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한 세마포옷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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